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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폐미; 퇴폐주의






w. 이현






퇴폐미
: 1.'도덕이나 풍속, 문화 따위가 쇠하다'라는 뜻의 '퇴폐'와 '아름다움'을 뜻하는 '미'가 결합하여,
'퇴폐적이지만 아름답다'라는 뜻을 가진 말.



퇴폐주의
: 1. 풍속이나 도덕 따위가 건전하지 못하고 문란한 상태. 또는 그런 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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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워."
"..."
"왜, 아름답다는 말이 싫어?"
"..."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아름답다 읊조리는 세훈의 눈동자는 저의 발치에 내동댕이 쳐져있는 종인에게 향해있다. 천천히 고목 의자에서 엉덩이를 떼어 다리를 굽혔다. 뚜둑, 하고 듣기 좋지 않은 소리가 울린다. 쪼그려 앉은 자세가 된 세훈의 검은 정장은 멋 없게 구겨졌다. 멋없게 구겨진 정장 마이의 팔 소매를 걷어 흰 팔뚝이 보이게보이게 하고, 팔뚝에 이어지는 하얀 손으로 종인의 검은 머리칼을 휘잡았다. 팔뚝은 어깨에서부터 내려오는 힘에 울긋불긋 핏줄이 다 드러났고, 손목을 뒤로 꺾어 종인의 머리칼로 하여금 고개가 젖혀져 길게 뻗은 목선에 굴곡이 드러났다.



"대답, 하기 싫은거야?"
"..."
"입꼬리는 왜 올리는건데, 눈은 왜 휘어지는건데."
"난, 정말, 네가,"
"사랑해"
"싫어."



아름답다 말하는 세훈의 입술은 종인에게 답을 요구하고 있었다. 종인이 한 음만을 입에서 내줬으면, 한 단어만을 입 밖으로 내뱉었으면 하는 세훈의 작은 소망을 종인은 모르는 것일까. 돈이라는 물질의 검디 검은 흑빛으로 물든 뒷세계에서 많은 사람을 거느리고 있는 세훈에게 이리 말도 안 되게 작은 소망을 갖게 한 자는 평범한 대학가를 거닐던 학생이다. 세훈이 부와 권력을 다 내려놓고 저의 앞에서 그저 한 줄기 사랑을 갈구하게 만드는 그 남자는 이 세상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흔한 남성이다. 그 남성, 종인은 세훈의 질문에 답이 없었다. 그의 검은 눈동자는 말이 없었다. 그저 눈을 가늘게 떠서 제 앞에 보이는 사람의 형상만을 바라본다. 종인의 검은 눈동자는 초점을 맞춰 한가운데 멈춰 섰다. 검은 눈동자는 순식간에 초점이 흐려지고 앞이 어두컴컴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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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훈은 종인을 눈에 담아두었다. 보통 자기와 닮은 사람 또는 완전히 반대되는 사람에게 눈길이 간다 하지 않았던가. 종인은 세훈과 그리 닮지도, 다르지도 않는 평범한 스물의 남성이었다.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하고, 튀는 사람에게 고개를 돌리며, 저보다 여린 자에게는 손을 뻗는, 이 어느 세상에서나 흔한 남성이었다. 그렇다고 세훈이 애심(愛心)을 품을만한 작은 소재거리 하나 없었고, 뭇 남성들이 뻑간다 표현하는 하얗고 선이 고운 저 붉은 거리의 여성도 아니었다.



세훈은 종인을 검디 검은 흑빛의 물질인 돈과 닮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저와 닮은 사람이 아닌 돈과 닮은 사람. 손에 집히는 물질적인 가치 중에 가장 부를 표현하기 쉬운 것이며, 거래하기도 쉬운 것. 사람들을 쉽게 껍데기뿐인 행복에 갇히게 하는 것. 미래를 가늠치 못하게 머릿속을 헤집어 놓는 것. 세훈이 생각하는 돈이란 그랬다. 세훈이 생각하는 종인 또한 그랬다.



종인은 세훈에게 품에 넣을 수 있는 물질적인 것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이었으며 마음을 이리저리 움직이기에도 쉬웠다. 껍데기뿐인 사랑과 애심(愛心) 속에서 살 수 있게 만들었으며, 한 치 앞의 시간과 행동도 예상치 못하도록 만들었다. 세훈에게 종인이랑 그랬다. 제 뇌 속을 이리저리 헤집고 다녔으며, 뇌 속에서 움직이다 가는 혈관을 타고 내려와 심장을 쿵쿵 울리게 만들기도 하였다. 종인에 의해 심장이 쿵쿵 울리면 이미 너저분해진 뇌는 종인이라는 것에 반응하게 되었다. 세훈은 너무나도 깊은 종인에게 빠져버려 헤어 나올 수 없게 되었다. 아니, 헤어 나오지 않길 바라며 제가 직접 깊은 바닥 어딘가에서 보이는 나갈 길을 막아버렸다. 종인의 가장 깊은 곳에서 그는 갇혀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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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인에게 세훈은 병이었다. 저도 모르는 사이에 세훈이 혼자 제 맘에 들어와 이쪽을 헤집고 다녔다. 종인이 세훈의 뇌 속을 너저분하게 한든 것이 아니라 세훈이 종인의 온몸을 병들게 만든 것이다. 뇌에서 혈관을 타고 심장엘 내려와? 나로 하여금 그것에 반응해? 납득하지 못한다. 저는 그런 적이 없다. 세훈 혼자 지독한 망각 속에서 살고 있는 것이지. 세훈이 지독한 망각에 빠져 저의 사랑을 갈구하고, 그 사랑을 갈구하기 위해 저를 묶어놓고, 가두고, 해하려 한다. 스스로를 옥죄이며 그 품 안에 갇혀있는 종인을 숨 한 번 쉬지 못하게 꽉 조인다. 그렇게 숨을 쉬지 못하며 죽어간다. 당신이 사랑을 갈구하는 방법은 이미 한참 전에 잘못된 거야.




아름다움이라는 단어를 저에게 세뇌시키며 입을 맞춰온다. 아름다워, 아름다워. 처음엔 할 수 있는 말이 아름다워 밖에는 없는 줄 알았다. 갈수록 아름답다 칭하는 것이 구체화되고, 그 아름다움에 손길을 가하고 있다. 너의 검은 눈은 나를 헤어 나오지 못하게 하는 거야. 너의 입술은 핏기 하나 없어도 하얀 너의 창백한 얼굴을 화려하게 만들지. 목에서부터 어깨로 떨어지는 선이 아름다워. 빛이 잘 들지 않는 곳이라 그런 것인지 흑백의 세계에 나를 빠뜨리는 것 같아. 너의 손은 참 굵직하구나. 손에 굳은살이 배겨있는 것조차도 완벽하게 자리 잡아있어 아름다워. 너의 다리는 직선이라는 것을 가장 잘 표현하는 것인 가보아. 매끈한 다리에 근육이 자잘하게 잡혀있는 걸 보고 있으면 깨물고 싶어. 너의 근육이 잡힌 그 내부를 탐하고 싶어. 그렇게 매일을 살아왔다. 구역질 나는 그 단어들, 그 언어들, 듣기 싫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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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을 꾹 닫고 열지 않은지 꽤 오래 지난 것 같다. 반항하는 투로 소리 하나 내지 않겠다고 입을 꾹 다물고 해가 두어 번은 움직인 것 같은데.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나다 시간이 오래 흐른 나머지 배고픔도 느끼지 못하고, 목은 컬컬함을 넘어서 건조함의 극을 달했다. 소리를 내고 싶어도 소리를 내지 못 할 지경이라지. 온몸에 힘이 없어 뒤로 묶여있는 손을 꼼지락거리기도 힘이 들어 가만히 있는지 너무 오래였다. 그리고 세훈이 오지 않은 시간도 오래였다. 세훈, 그 작자는 매일같이 제 방에 들어와 턱 한 번 잡아 입을 맞추든지 몸을 잡아끌어 껴안든지 하는 사람이다. 어째서 하루 이틀이 지났는데 오지를 않는 것인지.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건가. 왜 저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잘 모르겠다. 이젠 안 오면 어색한 사이가 되어버린 건가. 내가 그 남자를, 허.



머릿속이 세훈이라는 남자로 가득 차 갈 즈음에 얼른 잊어야겠다 생각하며 잠을 청했다. 힘이 없어 차가운 맨 바닥에 누운 채로 엎어져, 이대로라면 죽을 수도 있겠다, 생각했다. 천천히 꿈에 빠져들으려 할 때쯤 누군가 문을 벌컥 열었다. 온 건가. 왜 하필 이런 잠들기 직전에 쳐들어오는 것인지 모르겠어. 눈이 붓고 눈꼽으로 눈을 뜨기 힘든 때에 그나마 눈을 열어 빛을 바라봤다. 평소와는 조금 다르게 터덜터덜, 힘 없이 걸어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또, 콧 속을 자극하는 비린내. 하얗고 힘줄이 울긋불긋한 손으로 저의 턱을 치켜드는 세훈과는 조금 다르게 딱딱한 것이 제 목울대에 닿고, 숨통을 조여왔다. 건조한 목 내부가 숨을 쉬기에 힘이 들도록까지 해버리니 정말 눈 앞이 캄캄해졌다. 뭐지, 이 사람은 왜 나를 이렇게 잡은 거지. 오세훈이 왔으면 좋겠다. 나를 죽이지 마.



숨이 막혀 켁켁 거리는 동안 두 팔이 제 허벅지에 닿았다. 결박되었던 손이 풀썩, 힘없이 나가떨어진 것이다. 어째서 손아귀의 힘이 풀린거지. 팔이 허벅지에 닿고 바닥에 닿으니 제 목에 가해졌던 힘도 한 순간에 팍, 풀렸다. 역시나 힘이 없는 몸뚱이라인지라 그대로 온기가 식어버린 차가운 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 몸에 감각도 희미해 진 것인가, 차가운 바닥이라 생각했건만, 그리 차갑진 않았다. 바닥에 쓰러져 눈은 천장으로 향해 풀려있는데, 다리에서 우드득 소리가 났다. 너무 오랜시간 결박되어 밧줄이 발목에서 떨어지지 않은 탓인지, 살갗이 조금 떨어져나가 붉게 근육마디를 드러내는 것 같았다. 쓰라림이 느껴지며 자유로움 또한 느낄 수 있었다. 손발이 풀리고 입에 물을 적시며 흰 알약을 하나 넣어 삼키게하였다. 몸을 자유로이 풀어주고 입에 넣는 이 것을 내가 무엇인 줄 알고 먹으랴. 하지막 역시 외부에서 가해진 힘에 기침을 토해내며 삼킬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곤 큰 물병 하나만을 놓고 나가버렸다.



시간이 조금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몸에 별 다른 변화가 없는 것을 확인하곤 독약이 아니었음을 알았다. 그렇지, 독약이었으면 그냥 묶인 상태에서 입에 쑤셔 넣었을테니. 알약은 단순한 비타민 같았다. 서서히 몸에 힘이 채워지고 약간의 행동을 할 수 있을 정도의 힘이 생겼다. 몸을 일으켜 눈앞에 보이던 유일한 것, 큰 물병을 힘겹게 따 벌컥벌컥 물을 들이켰다. 물은 입 안에만 들어차지 못하여 목을 타고, 가슴을 타고 흘러내렸다. 입고있던 반팔 티가 흥건히 젖었다. 바지또한 금세 축축해졌다. 물병의 뚜껑을 닫지 못한 채로 옆으로 쓰러져 물이 줄줄 샜다. 물이 줄줄 새는 것을 보고도 방관했다. 물로 배를 거하게 채우고 나서는 잠시 기억을 잃었다.






-






온 몸이 간질거리는 느낌에 몸을 움찔하며 눈을 떴다. 눈을 떠보니 옷이 갈아입혀져 있었다. 제 몸은 누가 옮긴 것인지, 포근한 침대 위에 잇었고, 이불까지 덮혀있었다. 이전에 있었던 곳과는 다른 장소이다. 회색과 하얀색으로 치장돼있는 방은 세훈과 묘하게 닮음을 느꼈다. 세훈의 방인가. 불편한 몸을 뒤척이다 제 옆에 누군가가 있음을 인지했다. 이렇게 감이 덜떨어져서야, 누군가 뒤에서 때려도 모르겠네. 몸을 돌리어 옆에 있는 사람을 확인했다. 세훈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으나, 그래도 확인하고 싶었다. 기억에서 그를 본 지가 오래되었으니까.



세훈은 자고있던 것이 아니었다. 두 눈을 뜨고 옆으로 돌아누워 나를 지켜보고있었다.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으며 나를 천천히 끌어안았다. 넓은 어깨와 힘있는 팔이 안정감을 주었다. 세훈이 어깨 부근에 손을 올리니 저도 안아야겠다는 생각에 세훈의 허릿가에 팔을 걸쳤다. 그리고 무언가 축축함이 느껴졌다. 물보다는 진득했고, 축축하다는 것을 인지하고 약간의 비린내를 느낄 수 있었다. 피비린내다. 급하게 몸 위로 덮여있던 이불을 걷어 축축한 세훈의 옆구리를 응시했다. 세훈의 왼 옆구리에선 피가 나고 있었다. 아니, 철철 흐르는 정도였다. 이불 뿐만 아니라 침대의 시트까지 붉은 계열의 빛을 띄고 있었으니. 그가 입고있던 흰 셔츠 역시 붉음으로 물든지 오래였다. 피가 흐른다 표현했으니, 물든 것보다는 흥건히 젖었다는 표현이 알맞는 것같다. 새빨간 피의 색도 아니었다. 살짝 응고되어 셔츠는 자주빛과 갈빛을 띄고있었다.



"피, 피... 지, 혈은..."
"괜찮아, 안 해도 돼."
"아, 안해도 된다뇨, 침대가 다 젖었는데."



괜찮아. 세훈의 말은 그것이 다였다. 이전과 다르게 구속된 몸이 아니니 급하게 제가 입고있던 셔츠를 벗어 세훈의 옆구리를 꾹 눌렀다. 세훈이 아흐, 하며 짦은 신음을 내뱉었다. 항상 저한테는 아름답다는 말만 하던 자였다. 괜찮다는 말을 세훈의 입에서 처음 들어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그동안 봐왔던 정 때문인지, 어째서 눈물이 나는 것일까. 그저 피를 흘리는 것이 무서운 것인가, 세훈이라는 이 사람의 상처가, 죽음이 무서운 것인가.




"하지마, 이미 늦었어. 늦은지, 오래야."
"아, 아녜요, 얼른, 피ㅡ



늦었다니까. 세훈이 짙은 목소리로 말을 꺼내는 것이 무언가 비어보였다. 말이 비었는지, 마음에서부터 비어 말이 나왔는지는 모른다. 말이 비어있었다. 허망한 사람같았다. 미련이 없는 사람 같았다. 곧 죽을 사람처럼 말을 하는, 뇌리에 '죽을' 이 꽃히고나서는 그대로 사고가 정지되었다. 옆구리를 지혈하던 두 팔의 힘도 풀렸고, 무릎으로 서있던 다리의 힘도 풀렸다. 그 자리에 그대로 내려앉았다. 심장도 같이 내려앉은 것 같았다. 그리고 이런 나 자신 또한 이해할 수 없었다. 사고회로가 정지된다하여 심장까지 쿵 하고 내려앉을리는 없지 않은가. 아아, 내가 진심으로, 내가, 이 남자를,


사랑하고 있던 것일까.





























*원래는 수위를 넣을 생각이었으나 예상 외로 길어져서....(먼산

*본 글은 유리어항 팸에서 작성한 2017.5 미션글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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